부산관광투어
▣ 부산관광투어
http://www.citytourbusan.com/ko/02course/01.php?PHPSESSID=0435b8a1cf356dfd425b6300b65c0e6b
http://www.citytourbusan.com/ko/ebook/01/ko/EBook.htm
▣ 해안일주도로 노선번호 : 1011번 버스
부산시는 시민편의 위주의 버스노선 개편계획을 확정하여 해안일주도로 직행노선 6개 신설 노선을 비롯, 47개 버스노선 조정계획을 발표, 오는 11월28일 시행을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노선개편 작업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특히, 1011번 노선은 지금까지 시내버스 노선이 없었던 을숙도대교, 남항대교, 부산항대교, 광안대교를 연결하는 해안일주도로 직통노선으로써, 출·퇴근 근로자 등 서민들에게 권역별 최단거리 운행으로 인한 신속성과 유료도로 통행료 부담을 경감시키는 효과뿐 아니라, 시티투어 버스의 코스와 상당부분 일치하므로(부산항대교, 광안대교, 남항대교 등) 부산시 관광명소를 둘러볼수 있는 관광코스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됩니다. 시민 여러분은 11월 28일부터 신설되는 해안일주도로 1011번 노선의 많은 이용으로 부산속 곳곳의 관광명소를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 해안일주도로 노선번호 : 1011번 버스
○ 노선코스 : 경자청-녹산-을숙도대교-감천-남항대교-영도-부산항대교-수영-광안대교-센텀-해운대-청강리 ⇒ (직행6대, 출퇴근시 20분, 평상시 30분)
○ 노선코스 주요관광지 : 을숙도·낙동강하구에코센터, 감천문화마을, 송도해수욕장, 태종대, 광안리해수욕장, 벡스코·영화의전당 등
○ 시행일 : 2015. 11. 28부터
○ 1011번 노선 정류소 검색 : 부산시 버스정보관리시스템(BIMS) ▶ 1101번 검색
http://bus.busan.go.kr/busanBIMS/bus_map/map_main.asp?menuNum=2&mapGubun=daum
▣ 김해의 관광지
1.신어산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삼방동 일원
경남 김해시 삼방동에 위치한 신어산(634m)은 능선에서 김해시가지를 바라보면서 산행할 수 있어 올라가는 재미가 있고, 기암절벽 사이로는 구름다리가 있어 산행을 더욱 즐겁해 한다. 북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고 남쪽에는 광할한 김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 탄강지로 전해오는 구지봉은 이 산맥의 서쪽 끝부분에 있다. 정상에서 서쪽 주능선길을 따라 630봉까지 가는 도중에는 군데군데 암봉이 있고, 광할한 김해 평야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장쾌하다. 580봉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460봉의 암봉에 올라서서 신어산을 바라보면 빼어난 경치에 감탄하게 된다. 460봉의 전망대 같은 바위에서 동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암벽 밑에 천진암이 있고 숲길과 대밭길을 거쳐 은하사에 닿게 된다. 정상의 조망은 무척산 토곡산 매봉 오봉산, 금정산의 고당봉과 파리봉 등이 선명히 시야에 들어온다.
가야의 올림포스산답게 초기의 고찰 은하사와 영귀암 등이 있으며 기우단도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구암사·십선사·청량사·이세사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 산은 불모산(801m)의 신화와 함께 남방불교 전래의 성지라 할 수 있다.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를 뜻한다. 가락국 초기에 세워진 고찰 은하사와 동림사가 있다. 은하사는 가락국 수로왕 때 장유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본디 이름은 서림사라고 했다. 대웅전의 수미단에 쌍어 문양이 있어 인도 아유타국과 관계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김해 시내에서 김수로 왕릉과 허후릉, 구지봉 등 명소가 많으므로 산행시 함께 찾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분산성
종 목 사적 제66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어방동 산9
시 대 삼국시대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분산의 정상에 둘레 약 900m에 걸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박위가 수리하여 쌓은 뒤, 임진왜란(1592) 때 무너진 것을 고종 8년(1871)에 다시 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 위의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도록 쌓았다. 서남부는 험준한 천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현재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성 안에 이르는 통로는 산성 서쪽에 있는 계곡을 거쳐 북쪽 뒤편에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한 듯 하다. 현재 성 안에 우물과 암자, 그리고 민가가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3기의 비석이 있다.
성 주변에는 가야 무덤들과 수로왕비릉, 가야의 건국설화와 관련있는 구지봉이 있어 이 성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3.수로왕릉
종 목 사적 제73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서상동 312
시 대 가야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재위 42∼199)의 무덤으로, 납릉이라고 부른다.
수로왕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전하고 있으나, 무덤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무덤의 높이는 5m의 원형 봉토무덤인데, 주위 18,000여 평이 왕릉공원으로 되어 있다. 왕릉 구역 안에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전사청·제기고·납릉정문·숭재·동재·서재·신도비각·홍살문·숭화문 등의 건물들과 신도비·문무인석·마양호석·공적비 등의 석조물들이 있다.
고려 문종대까지는 비교적 능의 보존상태가 좋았으나, 조선 초기에는 많이 황폐했던 듯하다. 『세종실록』을 보면,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에 대해 무덤을 중심으로 사방 30보에 보호구역을 표시하기 위한 돌을 세우고, 다시 세종 28년(1446)에는 사방 100보에 표석을 세워 보호구역을 넓힌 것으로 나타난다. 무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선조 13년(1580) 수로왕의 후손인 허엽이 수로왕비릉과 더불어 크게 정비작업을 마친 후이다.
『지봉유설』기록에 따른다면 능의 구조는 큰 돌방무덤(석실묘)으로 추정된다. 이 기록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에 의해 능이 도굴을 당했는데, 당시에 왕이 죽으면 주위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을 같이 묻는 순장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4.수로왕비릉
종 목 사적 제74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구산동 120
시 대 가야
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비무덤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왕비는 성이 허, 이름은 황옥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인도 아유타의 공주로 16세에 배를 타고 와서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9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 중 2명에게 왕비의 성인 허씨 성을 주어 지금도 그 후손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높이 5m 정도의 원형 봉토무덤으로서, 무덤의 밑부분에 특별한 시설은 없다. 무덤 주위에는 얕은 돌담을 4각형으로 둘러 무덤을 보호하고 있으며, 앞 쪽에는 긴 돌을 사용하여 축대를 쌓았다. 중앙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지릉’이라는 글이 2줄로 새겨져 있다.
무덤에 딸린 부속건물로는 숭보제·외삼문·내삼문·홍살문이 있으며, 보통 평지에 있는 무덤과는 다르게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무덤 앞에는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 파사석탁의 석재가 남아 있다. 세종 28년(1446)에 수로왕릉과 함께 보호구역이 넓혀졌으며,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비석과 상석 등은 인조 25년(1641)에 다시 정비하면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왕릉에 비해서는 시설이 소박한 편이고 수로왕비릉이라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으므로 수로왕릉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본다면, 내부의 구조는 널무덤(토광묘) 또는 돌덧널무덤(석곽묘)일 가능성이 높다.
5.은하사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번지
김해시 삼방동의 신어산 서쪽 자락에 있다. 신어산의 옛 이름이 은하산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찰의 창건연대는 불분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왕후인 허황옥 오빠 장유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당시의 이름이 서림사였다 한다.
그러나 전설 속의 창건 연대가 불교 전래 이전인 서기 1세기라 전설로 생각되고 있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1900년이 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사찰이다. 사찰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을 토대로 삼국 시대에 창건된 절인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 있던 건물은 동림사와 함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양식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은하사의 대웅전 수미단에는 허황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도 추정되는 쌍어 문양이 있다. 쌍어 문양은 허황옥의 출신지로 기록된 아유타가 인도의 한 왕국이라는 가설에서 종종 인용된다. 은하사가 위치한 신어산의 이름도 '신의 물고기'라는 뜻이다. 신어산을 배경으로 한 경관과 진입로의 소나무 숲이 아름다우며, 단아한 사찰의 모습이 찾는 이의 마음까지 씻어주는 듯하다. 영화[달마야 놀자]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은하사의 대웅전은 1983년 12월 30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된 목조 건물로서 다포계양식(多包系樣式)인데 공포는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이며 내부 천장은 격자천장이다. 외부 쇠서받침의 윗몸에는 연꽃을 조각하였고 내외 살미로는 용과 봉황새의 머리를 새겨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건물 내부는 불상 위에 9개의 보개를 설치하였으며, 삼세불,나한상 등 32점의 벽화가 있는데 이는 경남유형문화재 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이들 조각과 구조 수법으로 미루어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6.김해향교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7호
지 정 일 1983.08.06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대성동 224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김해향교의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김해읍지』에 의하면 옛 김해부 동쪽 다전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향교가 있던 산이 무너져 숙종 14년(168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사지내는 곳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일반 향교의 배치와 비슷하다. 정문인 풍화루는 누형식의 건물이 아닌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된 1층 건물로 지어져 특이하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 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제사만 지내고 있다.
김해지방 향토사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향교이다.
7.무척산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
일명 식산이라고도 불리는 무척산은 생림면 생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의 높이는 해발 700.1m이다. 산세는 기묘한 바위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산의 높이에 비해 계곡이 깊고, 산세가 험하다.
산정의 천지는 수로왕의 국장 때 장지에 물이 고여 정상에 못을 파서 물이 고이는 것을 막았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중부에는 수로왕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모은암, 동쪽에는 가락국의 불교 중흥을 위해 창건했다는 백운암이 있다.
산행코스는 원동역 용당나루코스, 생리면 생철리코스, 마현고개코스 등 다양하다. 일반적인 코스는 생림면 생철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모은암을 거쳐 정상에 올라 백운암을 거쳐 여차리 학운동이나 백운동으로 빠진다. 생철리로 들어가기 전 1017번 지방도에서 우측으로 20분쯤 올라가면 기암절벽과 단풍수림으로 둘러쌓여 있는 모은암이 보인다. 주위 산허리 부분에는 많은 암봉이 산군을 이루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암봉의 규모가 크며 생김새가 별나다.
모은암에 오르기 전 좌측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지그재그길을 40분 정도 올라가면 산정호수인 천지가 펼쳐진다. 천지에서 정상까지는 완만한 산길이 이어진다. 제방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백운암과 무척산으로 갈라지는 능선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낙동강과 강 건너 만어산이 내려다보인다. 하산은 남쪽 능선을 따라 하사촌마을로 내려온다.
하사촌마을에서 다시 동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되돌아가면 백운암과 용당나루를 거쳐 원동역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용당나룻배는 하루 6차례 정도 운행된다. 대중교통편은 삼랑진이나 김해로 가서 생림면행 버스로 갈아타고 마현고개나 모은암 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8.국립김해박물관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구산동 232번지
1998년 7월 29일, 국립김해박물관은 고대국가의 하나인 가야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 위해 개관하였다.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김해시 구지봉 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의 문화재를 집약 전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부산·경남지역의 선사시대의 문화상과 가야의 성장 기반이 된 변한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건물 전체를 검은 벽돌로 외장하여 철광석과 숯의 이미지로 철의 왕국 가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전시Ⅰ실과 전시Ⅱ실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시Ⅰ실에는 울산 검단리 마을유적과 창원 다호리 1호무덤의 모형이 있고, 가야 문화의 기반이 되는 선사시대와 변한 및 전기 가야를 대표하는 금관가야 유물이 총망라되어 있다. 전시Ⅱ실에는 각 지역별로 형성된 가야 문화의 독창성과 변화상을 보여주는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길목엔 현재에서 과거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타임캡슐을 상징하는 구조물이 있으며, 약 13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가야의 역사는 다른 고대 국가들에 비해 역사 기록으로 잘 남아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가야의 실체는 대부분 발굴조사 등의 고고학적 방법으로 찾아진 고대인들이 남겨놓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복원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국립김해박물관은 고고학 중심의 전문 박물관으로 특성화되어있다.
9.사충단
종 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99호
지 정 일 1990.12.20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동상동 161
시 대 조선시대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8년 (1871)에 건립한 묘단이다.
처음에는 동상동 873번지에 있었던 것을 김해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227-6, 228번지로 옯겨 세운 것을 또다시 동상동 161번지 일원에 확장 이건하였다.
10.산해정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
지 정 일 1985.01.23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737
시 대 조선시대
산해정은 조선시대의 거유 남명 조식 선생께서 30년간 강학하던 곳으로 조선 선조 21년(1539) 향인들의 청에 의해 김해부사 양사준이 정자의 동쪽에 서원으로 착공했으나 왜란으로 중지된 것을 광해군 원년(1609)에 안희, 허경윤에 의해 준공되어 신산서원이라고 사액되었다. 그후 대원군의 훼철영으로 철거되었다가 순조 20년(1815) 송윤중 등이 다시 중건한 것으로써 사당영역이 없이 강학공간만으로 이루어진 서원형식을 가지고 있다.
주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갖춘 목조와가이며, 오량가구에 이익공으로 장식되었다. 전면부에 고주초석을 두고 침실부에 고이반자를 설치한 것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